2012/04/16 00:49

오늘의 회고 d a l l

 요즘들어 되게 내 삶이 지루하고 재미가 없어졌다. 그동안 나는 재미있는 일들만 해왔고 앞으로도 그러할 예정이었다. 그래서 더욱 요즘같은 시기는 너무 적응이 되지 않고 마주하기보단 되려 피하게 된다. 그러다보니 정말 쓸모없는 짓들만 하고 있게 된다. (물론 그러한 무언가들로 인해 웃고 재미난 시간을 보내긴 하지만 진짜는 아니다.)
 언제나 자신만만했었다. 중2병을 벗어났다고 해도 마음 한켠엔 편협적인 마인드가 여전히 남아있었고, 무슨 자신감인지 모르겠지만 미래에 대한 확신도 있었다. 내가 이렇게 나락으로 떨어지게 된 건 불과 한 달도 채 되지 않는다.
 스무해 하고도 삼년을 오롯이 나의 시선으로만 살아왔다는 것에 굉장한 공포를 느꼈다. 나는 지금껏 내가 본 것만 봤고 보고 싶은 것만 봤고 보고 싶어 하는 것만 봤다. 그렇게 말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젠장. 나는 이십삼 년 내내 고정관념과 선입견, 각종 위선과 편협에 둘러싸여 살아왔다. 그러면서 나는 다른 이가 내게 무언가를 말할때 그건 아니라며 옳다는 소리를 했는데. 그건 내 세계의 옳음이었지 그의 옳음이 아니었던 것이다. 나는 이제 더이상 그 누구에게도 어떠한 말도 해줄 수가 없다.
 나를 위해 울어본 적이 언제였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이말은 곧 나를 돌아볼 시간을 가져본적이 굉장히 오래됐다는 것이다. 매일같이 울고 싶었다. 언제부턴가 나는 더이상 내 삶의 주체가 아니었다. 살아지니 살고 있었다. 차마 용기가 없어 죽을 수 없었다. 그냥 숨이 붙어있고 밤이 오고 아침이 오기 때문에 살고 있었다. 괴로움의 연속은 나를 무디게 만들었다. 상흔으로 가득한 핵은 차마 터질 수가 없어 시멘트를 부었다. 시멘트로 다시 단단해진 덩어리는 자신의 안에 있는 핵은 잊은채 그냥 그렇게 굴러갔다. 그렇게 계속 구르는 동안 온갖 먼지와 매연, 오물에 뒤덥혔다. 그렇게 더럽혀져서야 자신의 악취를 느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잊고 지냈던 핵을 찾기 시작했다. 어리석다. 이렇게 어리석을수가 있을까.
 난 무엇을 하고 싶었던 걸까. 무엇을 위해 지금까지 살아왔을까. 내가 진짜로 하고 싶은게 뭘까. 무엇을 위해 살고 있을까. 
 언제부턴가 외로움에 허덕이지 않게 되었다. 혼자 자궁에서 나와(쌍둥이도 있긴하지만 걔네도 한번에 튀어나오는 게 아니고 차례로 나오지 않는가. 누구나 다 시작은 혼자다.) 혼자 흙으로 돌아간다. (끝 역시 혼자다.) 시작이 반이고 끝이 반이면 시작과 끝이 전부니 더이상 외로움에 허덕이는 건 있을 수가 없다. 만약 외롭다라고 느낀다면 그것은 외로움이 아니라 본질을 탐구하는 시간이 다가왔다고 생각하자. 
 오랜만에 나를 돌아봤다. 그렇지만 여전히 목마르다. 오늘의 집중력이 여기서 끝을 맺었기 때문에 더이상 나를 파고 들 수 없다. 핑계다, 물론. 그렇지만 이 이상은 나를 건들일 수가 없다. 시멘트가 너무 꽁꽁 핵이 붙어있어 핵이 갈라질까봐 무섭다.

2012/02/05 03:34

청계천 f i r s t d r a f t

청계천을 걸었다. 내내 우리는 ‘6년만이야’ ‘기억나?’ 를입에 달았다.

애초에 서로 길게 말을 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서로에게무슨 질문을 하기 위해 걸었던 건 더더욱 아니었다.

 

그저 문득, 서로에게 묻고싶어졌다. 우리가 지나온 시간들만큼, 시간들로 생긴 간극의 온도처럼 매서운바람과 함께
살을 애는 추위와 함께,

 

우리는 걸었다.

 

서로 하나 둘 씩 서로가 지고 있는 짐을,

 

내려놓았다.

 

이야기를 마치고, 순간 우리에게 있던 벽과 간극이 조금은허물어지고, 좁혀진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걸어왔던 청계천의길이 6년동안 변하지 않고 그대로였듯, 우리도 어쨌든 자랐다고생각했지만, 우린 달라진것 보다 그대로인게 더 많았다.

                                               

아직도 걸어야 할 길 역시 한참이었지만, 우리는 걷는걸멈추고 서로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지나온 길도, 남은 길도 짙은 어둠 때문에 보이지 않았다. Hyun


2012/01/25 16:20

이수혁과 Sean Lennon h y u n

네이버 뮤직에서 이수혁이 추천한 곡들을 쭉 읽다가 문득 나와 겹치는 플레이리스트가 많다는 생각에 반가웠다.
Sigur Ros, Air. 이수혁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가 추천한 Sean Lennon 의 Parachute 를 듣는다.
오랫동안 잊고 있던 곡이었다. 예전에 참 많이 들었었는데...

오랜만이서일까. 멜로디도, 가사도 하루종일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는다.

가끔 이렇게 좋은 노랫말을 되새기는게 한권의 시집을 읽는 것보다 낫다는 생각. 
좋은 노랫말들을 점점 찾기 힘들어진 요즘 노래들 대신 자꾸만 예전 노래들을 꺼내 듣는건, 아마도 그런 연유가 아닐지. Hyun


2012/01/18 09:45

뜬금없이

상쾌한? 아침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지만.
문득.


2012/01/17 23:39

세월 앞에 자존심을 h k

 어느 곳보다도 정반대의 것을 느끼기 쉬운 곳이 있다면 병원이 아닐까. 여섯 명이 누워있을 수 있는 6 인실 한 구석에는 말보다는 주름살로 그의 삶을 설명하는 것이 더 빠를지도 모를 한 분이 침대 위에 누워 말없이 천장을 바라보고 있다. 무엇을 위해 살았을까라는 질문 하나로는 부족할지도 모른다. 먹고 살기 힘든 시기에 세상의 빛을 보았을 때 그리고 성인이 채 되기도 전에 혼자의 힘으로 모든 것을 헤쳐 나가야 했을 때 그는 끓어오르는 것을 그대로 그의 힘줄과 그의 정신을 통해서 현실로 구현했을 것이다. 그에게는 다른 목표가 없었다. 오로지 그의 아내와 강아지 같은 자식들을 위해서 사는 것이었다. 그는 늘 패기가 넘쳤고, 두려움은 없었으며 그의 자존심만큼은 그 어떤 것 아래로 굽힐 수 없는 것이었다. 그는 그렇게 살았다. 그리고 그의 얼굴에 고생의 흔적이 한 줄 두 줄 새겨질 때쯤 마냥 강아지 같던 그의 아이들은 어느덧 자신의 젊은 시절의 모습을 닮은 어른으로 성장해 있었고, 그의 아내는 그와 함께 세월을 걷고 있었으며, 더 이상은 춥고 좁은 방에서 굶을 필요가 없게 되었다. 그는 행복했고 언제나 자신의 삶을 후회해본 적이 없었다. 그는 항상 가족을 위해서 자신의 얼굴의 주름과 행복을 바꾸곤 했었다. 하지만, 그는 더 이상 행복할 수 없었다. 그는 세월이 흐르면 흐를수록 자신이 살아갈 수 있었던 이유 중 유일한 것이었던 것으로부터 멀어져 갔고, 붙잡으려고 노력도 해보았지만 도리어 그들 사이를 더욱 멀게만 할 뿐이었다. 그렇게 그의 반 평생 이상을 자신의 아내와 자식들을 위해 흘려 보냈고, 얼마 남지 않은 삶의 일부를 그것들을 다시 제자리로 돌려놓으려고 붙잡는 것을 위해 흘려 보냈다. 그리고 지금 그는 6 인실의 어느 침대 위에 누워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고만 있다. 이제 그는 화장실에 가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부축이 필요했고, 화장실 내에서도 혼자일 수 없었다. 항상 그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았던 패기와 자존심을 내세웠던 그였지만, 세월 앞에서 그의 그러한 것들은 더 이상 그의 소유물일 수 없었다. 그는 어쩔 수 없이 그것들을 내려 놓을 수 밖에 없었다. 그가 말 없이 누워 있는 침대 앞의 TV에서는 새끼 곰이 태어나는 장면이 나온다. 세상의 빛을 기대하고 있는 듯 힘차게 움직이는 새끼 곰의 모습이 묘하게 병원의 6 인실과 어울린다. 세월의 끝과 시작이 이어지는 듯한 느낌마저 준다. 새끼 곰 또한 세월 앞에 그의 강했던 발톱은 무뎌질 것이고 세월의 끝을 맞이해야 하는 순간에 다다를 것이다. 세월 앞에서 그의 자존심은 또 다른 새끼 곰 아래로 내려놓게 될 것이다. 그리고 침대 위의 그는 TV에 잠시 눈길을 주는 듯하다가 눈을 지긋이 감아버렸다. 그의 눈꺼풀 아래로 어둠이 드리워지고, 어둠 아래로 그의 삶이 주마등같이 스쳐 지나갈 것이다. 한 장면 한 장면 그는 어떻게든 기억 속에 새기려 노력한다. 세월 앞에 한 없이 작아져 버린 자신과는 다른 그 장면들을Seok



2012/01/17 00:59

글을 쓴다는 것은 h k

 글을 쓴다는 것은 누군가에게 계속해서 밥을 먹고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것일 수도, 누군가에게는 미처 말할 수 없었던 자신의 심연을 들어줄 수 있는 친구가 되어주는 것일 수도, 그리고 누군가에게는 자신의 육체가 영원할 수 없다는 것에 대해서 본능적으로 영원함을 희구하기 위한 하나의 기록으로써 의미를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비단, 이러한 이유가 아니더라도 이것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고백의 편지 혹은 미워하는 사람을 벌하기 위한 고소장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나에게 글을 쓴다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하듯 하나의 의미만을 갖지 않는다. 그리고 내가 커가는 과정과 함께 그것의 의미 또한 꾸준히 변해왔다처음은 그저 글을 쓴다기 보다는 글을 그리는 것에 가깝게 시작되었다. 그리고 조금 더 성장했을 때는 그림에 의미를 덧붙일 수 있게 되었고, 어른의 육체에 가까워질 때 쯤 글을 쓴다는 것은 나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세상을, 그 누구도 나를 비난할 수 없도록, 몰래 욕할 수 있는 비밀함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으로 의미가 통하게 되었다
.

 
그리고 작년 2011, 비밀함 이상으로는 의미를 가질 수 없었던 것은 친구와 잡지를 만들기 위해서 누군가에게 보여 주어야 하는 것으로써 의미를 가져야 할 필요가 있게 되었다. 필력의 부족은 막론하고 잡지를 위해 글을 쓴다는 것은 나만의 비밀을 내가 모르는 사람들에게 발설 해야 하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그리고 그 발설은 그렇게 오래가지 못하고 끝나버렸고, 내게 물음 하나를 남겨주었다
.
 
 ‘
글을 쓴다는 것은 내게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난 이 질문에 대해 답을 하고 싶었다. 그리 어렵지 않게 한 가지의 결론에 도달하긴 했지만, 적어도 그것은 23살이라는 나의 시간과 공간에 대한 대답일 뿐, 영원히 지속될만한 결론은 아니었다. 글을 쓴다는 것은 더 이상 비밀함도, 발설해야만 하는 것도 아니었고, 그저 나의 생각에 대한 정리로서만 의미를 가질 수 있었다. 이렇게 의미를 정의하는 것은 꽤 중요한 것이다. 이것은 남의 눈이 나의 눈이 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말하기도 했고, 지금의 나만을 서술하면 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글을 쓴다는 것은 그저 ‘23살의 나이면 되는 것이다. 23살의 나
Seok

2012/01/15 23:34

한 동안 뜸했었지. h y u n

처음 친구와 Firstdraft를 시작했을 때 다른 것은 몰라도 다짐했던 것은 –즐기면서 해보자, 라는 것이었다. 막상 (모든 일이 그러하듯) 잡지를 만드는 일은, 보통 일이 아니다, 라는 걸 깨달은건 정말 ‘금방’ 이었다.
즐기기는 커녕, 매번 시간에 좇기듯 글을 써야했고, 남의 글에서는 그렇게도 잘 찾을 수 있던 오류들도 내가 쓴 글에서는 발견하기 힘들었다. 어쩌면 그렇게라도 부족한 내 능력을 감추고 싶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렇게 받아든 결과물이 좋을 리가 없었다. 잡지에서 유일하게마음에 들던 부분은, 현영이 찍었던 사진들 뿐이었다. 나의글은 현영이가 찍은 사진들의 아우라마저 앗아가는 듯 했다. 그래서, 너무 미안하기도 했다.

잡지라고 하기도 뭐한 기획, 거기에 사진의 아우라마저 죽이는글들까지. 내 부족한 능력을 많은 사람들에게 보인 꼴이 되어버렸다는 생각에, 나는 지난 한달 동안 조금은 비겁하지만- 아무런 글을 쓸 수 없었다. 아니, 억지로 쓰지 않았다.

대신, 나는 지난 한달동안 닥치는대로 책을 읽었다. 하루키를 초기작부터 읽기 시작했고, 보르헤스도 다시 읽기 시작했다. 산문집, 기행문, 자서전. 장르를 가리지 않고 말 그대로 닥치는대로읽었다.

그 책들을 읽는 동안 부족한 내 능력에 대한 해답은 찾을 수 없었지만, 적어도 쓰지 않고 그저 숨어버렸던 내 자신이 비겁하고 어리석었다는 것 만큼은 분명해졌다.

누군가의 보기만 하고, 읽기만 하는것은 차라리 보지 않고, 읽지 않는것보다 못하다는 말처럼, 그게 무엇이든 일단 써보기로 했다. 그런 의미에서 얼마전 읽었던 신형철이 쓴 느낌의 공동체서문 마지막 글귀는 내게 큰 울림을 주었다. 옯기자면, 누구에게도 상처주지 않는 사람이 되겠다는 미망을 오래전에 버린 것 처럼, 그저 나에게 부끄럽지 않은 글을 쓰기위해 나 자신을 더 삼엄하게 학대하려고 한다. 자부도, 체념도 없이 말하거니와,읽고 쓰는 일은 내 삶의 전부이기 때문이다.’

내 부족한 능력을 자책하며 도피하기 보다는 그 부족함과 함께 내 자신을 단련시켜가기로 다짐했다. 어떤 문제든 해답은 항상 결국 내 자신이 내리는 것이었다. 그 해답에대한 책임 역시, 내 자신에게 있었다. Hyun

 

2012년의 다짐.


2011/12/30 09:51

Firstdraft Vol.0.5 d o w n l o a d




부족함을 여실히 느끼며..첫번째 기록.

(다운로드)

2011/12/07 23:49

남산 f i r s t d r a f t


어느 누군가에겐 하루의 시작, 다른 누군가에겐 하루의 끝일시간.

누군가에겐 뜨거울, 다른 누군가에겐 차갑기만 할 시간.

 

남산 위에서 내려다본 서울의 거리와 풍경들은, 조그만 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불빛들때문인지 야경은 이곳 저곳 얼룩져 보였다.

각기 다를 시간들과 감정들은 형태만 다른 채 조그만 점이 되어 어쨌든 서울이라는 같은 하늘아래, 같은 을 새고있었다.

쓸데 없는 감정들과 생각은 무의미하다는 듯, 새벽의 남산은그 어느때보다도 고요했다. Hyun


2011/12/07 23:44

삼선교 f i r s t d r a f t

Photo by Seok Min Choi

시간은 너무나도 쉽게 우리를 떼놓고 달아나버린다.

항상 나는 제자리에 머물러있는 것만 같은데, 시간은 어느새내 시야에서 멀어져 나를 재촉한다.
항상 뒤처지는 나. 앞서가는시간. 그 간격은, (적어도 지금까지는) 무슨 수를 써도 좁혀지지 않았다.

삼선교를 떠났던건 작년 9월이었다. 처음 이사를 왔던게 2004년이었으니, 작년 9월까지- 6월이란시간을 삼선교에서 보냈었다.

 

버스정류장에서 내려 익숙했던 길들을 걸으며, 1년 새 (그새) 느껴지는 생소함에 놀랐고, 그리고 지나간 7년이라는 시간이 주는 무게감에 다시 한번 놀랐다.

 

서울의 모든 곳이 그렇듯, 처음 이곳에 왔던 7년전에 비해 이곳 역시 많은 것들이 순식간에 변해왔다.
 
단순히 변한것도 있었고, 송두리째 없어져 버린 것도 있었다. 물론, 내가 떠난 1년사이에도 여러 가지가 변해 (없어져) 있었다. 새로운빌딩, 공사 중인 아파트, 새로운 길. 떠나간 사람들, 새로운 사람들.

 

예정에는 없었지만, 문득 등굣길이었던 언덕이 걷고 싶었다. 언덕길을 오르며 나는 은연중 흩어져 있던 그때의 기억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어느것 하나 명료하게 기억나는 것은 없었지만 그 흩어졌었던 기억들은 나로 하여금 여러가지 감정들을 일으켰다. 그 어느때보다도 깨지기 쉬웠고, 위태로웠던 그때의 기억들은 부끄럽기도했고, 동시에 반갑기도 했다.

 

언덕길 주변은 변하지 않은 채 그대로였다. 모든 것이 변한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에, 왠지 모를 안도감이 들었다.
설사 그때의 기억들이 부끄러운 기억들뿐이라 해도, 당시의 나를 기억할 수 있는 장소에 대한 최소한의 미련이랄까.

 

8시를 조금 넘긴 늦은 시간이었는데도, 학교 교문을열려 있었다.
들어가 볼까 라는 생각도 잠시, 굳이 들어갈필요는 없었다. 들어가지 않아도 이미 충분했다.

 

발걸음을 돌려 늦은 밤, 친구들과 축구를 하고, 방송부 활동을 마치고 난 뒤 가끔 야경을 보기 위해 자주 멈춰 섰던 곳에 서보았다. 여전히 언덕 아랫길 골목 사이로 야경이 보였다. 가만히 야경을 바라보다문득 어떻게 처음 이곳을 알게 되어 야경을 보기 위해 멈춰 서게 되었 던 건지 궁금해졌지만, 아무리생각해봐도 그때의 기억들은 이리저리 엉켜 풀 엄두가 나질 않았고, 당시의 내 모습, 당시의 내 감정들도 흐리게만 번져 남아 있었다.

 

밤하늘은 그날 새벽에 내렸던 비 때문인지, 달조차 구름으로가려져 있었다. 앞으로, 1, 2, 그리고 오랜 시간 후 지금나에 대한 기억조차 흐려질 무렵 다시 이곳을 찾을 그때 역시 지금처럼 시간에 기며 허덕이고 있을까.
지금의 나를 조금은 선명히 떠올릴 수 있을까.

 

언덕을 다 내려오고 다시 바라본 밤 하늘은, 여전히 흐리기만했다. Hy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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